창의적인 메커니즘은 메커니즘이 만들어지는 단계 중 창의성이 어디에 개입했냐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Carto와 Chants of Sennaar만 제외하고는 원래도 다 해본 게임이라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넓은 주제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번 리뷰는 Balatro, Backpack Battles, Chants of Sennaar와 There's no Game : Wrong Dimension 각각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이 게임들이 하나의 주제에 엮여있다는 사실로부터 역으로 엮어낸 "창의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고민글 정도일 듯하다.
창의적인 메커니즘이라는 하나의 주제 하에 선정된 네 게임이지만 기획자로서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모두 다르다. 요약하면, 이 네 게임을 통해 메커니즘을 만드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각 단계에서 결과물을 "창의적"으로 느끼게 하는 요소들을 분리해 본다. 또한, 이런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고민해 본다.
이걸 게임으로 만들었네?
메커니즘 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조 혹은 체계를 뜻하고 있기에 표현할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게임으로 만들 것인가는 [[기술적인 기획역량]]만큼이나 영감에 의존하는 작업이기에 전문적인 기획파트뿐만 아니라 모든 인원이 아이디에이션에 참가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표현할 대상은 직업, 상황, 혹은 매우 구체적인 행동부터 감정, 사상, 주제의식 등 메커니즘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싶은 추상적인 표현 등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테마]]와 소재와는 조금 다르게 최종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규칙으로 빚어져야 한다.[1]
이 단계에서의 창의성이란 "겪어보지 못한 것"에 있다. 게임을 설명할 때도 "무엇을 하는 게임"으로 설명하듯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부터 창의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단계에서 결정되곤 한다.
이번 주제가 된 게임들 중 이 부분에서 두드러지는 게임은 아무래도 Chants of Sennaar다. "소통의 수단으로써 언어"를 코어 메커니즘으로 하는 게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신선함을 주고 있으며 특히 언어의 학습과 차이를 메커니즘으로 풀어낸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포커, 전투(1:1),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또한 표현하는 대상으로서 충분히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이지만, 플레이어가 창의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아니다.
모든 경험은 게임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뒤의 2,3,4 단계를 잘 설계하는 것이 조금 더 기획자의 역량에 가깝지만 대상을 정함에 있어 [[라프코스터의 재미이론]]의 게임 개발자는 사회가 놀이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을 게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걸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메커니즘은 어디까지나 경험을 만들어내는 규칙이지 경험 그 자체는 아니기에 도착점인 대상을 결정했다면 어느 각도에서 해당 대상을 바라볼 것인지, 그 각도를 결정해야 한다. There is no game의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한다"라는 메타적인 주제를 플레이되는 피동적인 존재로서의 게임을 의인화시켜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쩌면 "플레이되는 게임"이라는 주제, 플레이어와 게임과의 관계 등은 [[The Stanley Parable]]의 주제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각도가 너무나도 달라 같은 주제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온갖 주제, 이야기 등이 다루어지는 요즘 환경에서 보통 "참신함"을 느낀다면 이 단계에서의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 많은 것 같다. 무엇을 게임으로 만들 것인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 단계는 팀과 개발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작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보통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개선된다. 예시는 실제 게임과 무관하다.
- 무엇을 게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면 왜/무엇으로 인해 그 대상이 흥미롭다고 느꼈는가.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끼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를 설득할 수 있을까?
- 게임은 사람이 플레이해야만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지 않아? 게임이 사람한테 플레이되고 싶을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 언어는 참 흥미로운 대상인 것 같아. 특히 모르는 언어더라도 사람은 결국 공유하는 것이 있기에 행동을 보면 대충은 이해가 가잖아. 소리와 모양은 다르지만 사용하는 것이 결국은 인간이기에 그 차이가 연결되는 게 흥미로워.
- 백팩 히어로는 참 재밌는 것 같아. 특히 가방 내 물건의 배치를 최적화하는 부분이 재밌었던 것 같아.
- 현실에서 대상의 생리/작동방식을 추상화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제거하고 바꾸어도 처음 흥미롭다고 느꼈었던 요소가 남는가/없어지는가?
- 포커에서 흥미를 느꼈던 요소가 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면
- 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면 게임이 더 흥미로워지는가?
- 배팅과 상대등 일반적으로 포커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사라져도 패를 만드는 과정은 재밌는가?
- 가방의 배치를 최적화하는 게 재미있다면 직접 전투에서 물건을 누르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가? 빼도 괜찮지 않나?
- 플레이어가 목표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 플레이어는 패를 개선하면서 더 좋은 패를 뽑기 위한 개선, 덱 자체의 가치를 올리는 방식 등등을 탐색하게 될 거야.
- 플레이어는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해서 게임을 하나의 객체로 여기게 되고 이와 교감할 거야.
앞의 무엇을 게임으로 만들것 인가와 어떤 각도에서 해당 주제를 다룰 것이냐로 이루어진 여기까지의 두단계가 메커니즘의 기획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기획자의 역할이 아니라 게임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모두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이렇게 풀어냈다고?
Chants of Sennaar의 통역콘솔과 Balatro의 타로, [[Backpack Battles]]의 합체 시스템과 This is no game 속의 미니게임들의 각각의 메커니즘은 참신하다. 앞선 단계들의 기획의도를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재치 있는 메커니즘들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서 지금까지 없었던 플레이 방식을 만들어나갈 수도, 일반적인 게임의 진행이지만 중간중간 양념처럼 등장해서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도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부분을 생각해 봐도 좋을 듯하다.
- 대상을 정하는 단계에서 참신함을 가져갔다면 핵심 메커니즘은 참신함보다는 해당 대상을 최대한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게 좋다. 언어의 학습이라는 참신한 주제를 또다시 참신한 형태로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쉽게 느껴질지언정 그림 맞추기라는 딤된 기획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 대상은 평범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방식을 참신하게 가져갔다면 메인 메커니즘을 강하게 끌고 가 플레이어가 해당 관점과 방식으로 강하게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발라트로의 경우 포커라는 친숙한 소재에서 손패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라는 해석을 모든 메커니즘이 지지하는 형태로 구조적인 단단함이 있다.
- 주제와 이를 바라보는 관점 모두가 독특하다면 메커니즘에서의 참신함보다는 서브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개발자 - 게임 - 플레이어의 메타적인 관계를 크레디트롤에서 이름 바꾸기로 표현한 [[There's no Game : Wrong Dimension]]이나 결국은 언어적인 차이 또한 같은 사람들끼리의 표현임을 과정보다도 결과로 보여주는 통역콘솔은 게임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앞선 단계에서 발생한 참신함을 부각해 준다.
좋은 메커니즘이 모두 참신한 메커니즘은 아니고 참신한 메커니즘이 모두 좋은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지금까지 없었던 게임을 만들기에 지금까지 없었던 요소, 메커니즘(어쩌면 매우 작은 톱니 하나에 불과하더라도)을 만들 수밖에 없다. 좋은 게임은 적어도 하나의 참신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이게 이렇게도 되는구나
참신함은 새로운 것에 가치가 있음을 상대에게 설득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롭기만 한 것을 참신하다고 하지 않고 모두가 가치가 있는 것을 아는 것에 참신함을 느끼지 않기에, 참신한 메커니즘을 만들어내야 하는 기획자의 역량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이에 가치가 있음을 플레이어에게 설득하는 것에 있다.
[[There's no Game : Wrong Dimension]]의 참신함은 조금 잘못하면 유치함일 수 있다. 치밀하고 퀄리티 높은 일련의 게임들이 다소 단순할 수 있는 플롯과 주제의식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반면 Backpack Battles에서의 참신함은 오히려 이미 주목받아 알랴진 재미를 참신하게 전달함에 있다. 발견한 재미의 경험(가방정리를 해 전투를 진행한다.)에 대한 강한 해석(가방 싸는 게 재밌는 거지 클릭질하는 게 재밌는 것이 아니다.)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는 게임에서 훌륭한 그래픽과 연출은 물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Chants of Sennaar와 There's no Game에서 처럼 필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비동기 전투를 도입해 최적화를 상대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려 추구하는 재미를 끌어올린 것은 재미를 전달하는 방식에서의 참신함이다. Chants of Sennaar에서 언어의 학습 쪽의 난도가 높았으면, 경험으로서의 참신함은 살렸을지언정 관점의 참신함은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모든 민족이 결국은 사람이고,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합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는 스스로 도출해 낼 수 없는 관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단계를 선형적인 순서로 풀어보았지만 참신한 메커니즘의 출발은 순서대로 단계를 밟아가며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번뜩인 작은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게임 전체가 만들어진 경우도 수없이 많으며, 평소에 강한 관점을 가진 개발팀이 그저 새로 그릴 대상을 찾는 경우도 많다. 표현 또한 모든 것이 결정된 후 그것을 설득하기 가장 좋은 형태로 만들어지는 경우만큼이나 설득하기 쉬운 주제를 역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